잠잠하던 골프용품시장이 소란스러워졌다. 긍정적인 의미의 소란으로 주인공은 파슨스 익스트림 골프(PXG)다. 최근 수년 사이 골프용품시장은 몇몇 빅 브랜드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독특한 기능, 디자인으로 골퍼의 이목을 끌어온 수많은 브랜드들은 경쟁 과정에서 탄생과 소멸을 거듭했다. 빛을 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브랜드가 수두룩하고, 그나마 경쟁에서 살아남은 군소 브랜드들은 명맥 유지에 힘써야할 상황이다. 빅 브랜드 주도 아래 시장은 단순해졌고, 예측 가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골퍼들이 원하는 색다름에 대한 갈증은 해갈이
스카티 카메론은 골프와 퍼터에 관심이 많았다. 젊은 시절 여러 퍼터 공방을 오가며 기술을 익혔다. 쇠를 깎고 다듬는 고된 날의 연속이었지만 이때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정립해나갔다. 그가 퍼터 디자이너로서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한 것은 1991년 레이 쿡(미국을 대표하는 수제퍼터 브랜드 중 하나)에서 일하던 때다. 경쟁자가 수두룩한 레이 쿡 내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이 빛을 발한다는 점에 자신감을 얻었고, 이듬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브랜드 론칭과 함께 그는 그동안 구상해왔던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 퍼터를 만들기 시작했
골프는 2000년대 접어들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기에는 타이거 우즈의 등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 스타의 유무가 스포츠 종목의 인기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그만큼 골프계에 이슈를 몰고 온 인물은 없었다. 우즈의 등장과 함께 골프의 인기가 치솟자 때맞춰 세계적인 스포츠용품회사가 각종 골프용품을 만들어내며 골프용품시장에 뛰어들었다.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골프용품생산과 더불어 스타플레이어 마케팅을 더하며 빠르게 시장을 장악해나갔다.이들이 주력한 골프용품은 클럽과 골프화였다. 생산경험이 없던 클럽은 브랜드
일본을 대표하는 골프 브랜드 중 모회사가 타이어 회사인 곳은 던롭과 브리지스톤, 그리고 요코하마(프로기아-PRGR)다. 이들 회사 대부분 타이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고무)의 재활용을 고민하다가 골프볼 생산에 뛰어들었다. 이를 계기로 클럽까지 영역을 넓히며 토털 골프 브랜드로 성장했다.프로기아가 골프 브랜드로 큰 관심을 산 것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헤드스피드 이론을 제시했는데, 헤드의 스윙스피드 최대화를 클럽의 구성 요소로 꼽았다. 오늘날 모든 골프 브랜드가 클럽 개발 과정에서 헤드스피드를 중요한 요소로 삼
에코(ECCO) 창립자 칼 투스비는 신발 제조와 경영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어려서부터 제화 일을 시작한 그는 꾸준히 경력을 쌓은 끝에 30대 초반 코펜하겐의 신발 공장 책임자가 됐다. 하지만 자기 사업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도전을 결심했다. 집을 팔고 독일 국경에 인접한 덴마크 서부 해안의 브레드브로로 이주한 후 가동이 중단된 공장을 인수했다. 여기까지는 쉬웠지만 자신의 사업을 현실 속에서 이끌어가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꿈을 이루겠다는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자신의 비전을 끝까지 밀어붙인
골프프라이드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출신의 기업가이자 발명가인 토마스 L 파윅이 1949년 창립했다. 골프광인 그는 우연히 골프 그립에 가죽 대신 고무를 사용한 후 손에 밀착되고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즉시 지역의 제조회사인 웨스트게이트 러버 컴퍼니와 계약을 맺고 그립 생산에 나섰다. 그리고 당시 유명한 자동차 오일 ‘Gulf Pride’에서 영감을 받아 브랜드 명칭을 ‘Golf Pride’로 지었다.골프프라이드 등장 후 그립 시장은 서서히 고무그립 중심으로 흘러갔다. 그립감과 내구성이 우수한 것뿐만 아니라 가
야마하, 꽤 익숙한 브랜드다. 어떤 회사인지 자세히 몰라도 피아노와 같은 악기에서 야마하라는 브랜드를 쉽게 떠올릴 정도. 그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회사이자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우연’이 불러온 ‘출발’야마하는 일본 도쿄에서 열차로 1시간30여분 거리인 하마마쓰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일본 15대 도시인 이곳은 ‘음악 특성화 도시’로 불리는데 세계적인 악기회사 야마하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다. 도시 곳곳에 음악과 관련된 상점, 문양이 가득할 정도다.야마하의 탄생은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
2009년 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SBS 골프대전. 다양한 브랜드, 수많은 골프용품 중 골퍼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을 꼽자면 단연 로마로(RomaRo)다. 일본의 신생 브랜드인 로마로는 일본과 주력 해외시장인 우리나라에서 동시에 브랜드를 전개했고, 당시 전시회가 모습을 드러낸 첫 번째 무대였다. 때문에 브랜드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없던, 말 그대로 처음 보는 브랜드였다. 그럼에도 로마로가 골퍼들의 이목을 집중 시킨 것은 ‘매우 아름다운 디자인’ 때문이었다.우리나라 골퍼는 단조 아이언 선호도가 유난히 높고, 이
일본 대표 골프 브랜드를 꼽는 데 있어 ‘브리지스톤골프’를 빼놓을 수 없다. 오랜 역사와 전통, 앞선 기술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브랜드이기 때문이다.브리지스톤골프는 1931년 브리지스톤타이어 주식회사를 설립한 창업자 이시바시 쇼지의 지시로 1934년 론칭했다. 타이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로 골프볼을 만드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골프 사업 진출로 이어졌다. 론칭과 함께 골프볼 생산에 돌입한 브리지스톤은 첫 번째 골프볼인 ‘브리지스톤 슈퍼’ 골프볼을 시장에 내놨다. 이후 1951년 블루 스카이, 1952년 이글, 1956년
웨지의 명장이자 보키 디자인 웨지의 창시자인 밥 보키(Bob Vokey)는 1940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밀 기계공이자 열정 가득한 골퍼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덕분에 유년기부터 골프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그는 “아버지가 골프클럽을 만들고, 수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골프클럽 제작에 눈을 뜨게 됐다”고 회상하기도 했다.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보키는 몬트레올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스베드로 이주했다. 골프의 천국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주였기에 골프장, 골퍼를 자주 접하며 골프라는 스포츠에 매료됐다. 그리고 아
미즈노는 아이언 대표 브랜드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단조 아이언이 돋보인다.‘쇠’를 주소재로 사용하는 아이언은 크게 두 가지 공법으로 제작된다. 쇠를 녹인 쇳물을 틀에 부어 찍어내는 주조 공법, 달궈진 쇠를 두드려 모양을 만들어내는 단조 공법이다. 주조 공법에 비해 단조 공법의 난도가 높고, 좀 더 노동집약적이다. 때문에 골프계에서는 단조 공법으로 제작된 아이언을 높게 평가해왔는데, 미즈노가 이 부문에서 특화된 브랜드로 꼽힌다.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1906년 미즈노의 역사가 시작됐다. 미즈노 리 하치와 그의 동생 리조가 일본
캘러웨이(Callaway)는 세계 최대 골프 전문 브랜드 중 하나다. 창업자 일리 캘러웨이(Ely Callaway)의 이름에서 유래한 브랜드로 1982년 설립됐다. ‘더 나은 골프 환경 조성을 위한 제품의 끊임없는 혁신’을 모토로 전세계 골프업계를 이끌어 가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일리 캘러웨이에게서 시작된 브랜드일리 캘러웨이는 미국 조지아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면섭유 조달 담당 매니저부터 다양한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48세에 당시 최고의 방직회사인 불링톤산업의 회장이 됐다. 회장 재임 중 연매출 10억 달러를 달성, 탁월
젝시오(XXIO)는 던롭을 대표하는 골프 브랜드 중 하나다. 던롭은 영국(스코틀랜드)의 발명가이자 공업가인 존 보이드 던롭에 의해 1899년 설립된 타이어 전문 회사다. 타이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 고무를 활용, 골프볼 생산에 나선 것이 골프 사업 진출 계기다. 오랜 시간 골프볼 생산으로 주목 받았고, 1910년 최초의 딤플볼을 생산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던롭은 1985년 일본의 스미토모그룹이 던롭을 인수하며 일본 자본이 흡수한 회사가 됐다. 일본 기업의 자본이 투입됐지만 회사의 정체성을 바꾸는 게
골프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많다. 그 중 기업이 골프사업에 진출하며 브랜드가 만들어진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1명의 기술자에 의해 탄생했다. 웨지의 거장 로저 클리브랜드가 자신의 이름을 붙여 출시한 클리브랜드골프가 대표적이다.“드라이버는 쇼, 퍼트는 돈”이라는 골프계의 명언이 있다. 하지만 클리브랜드는 생각이 달랐다. 아마추어 골퍼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그린 주변에서 플레이를 잘해야 좋은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미국골프협회(USGA)에 따르면 150야드 거리에서 아이언샷을 했을 때 프로의 그린 미스 확률은
‘타이틀리스트’는 넘버원 골프볼 브랜드로 불린다. PGA 투어를 비롯한 전세계 골프 대회에서 선수 67%가 사용한 압도적인 사용률이 이를 증명한다. 타이틀리스트는 골프볼에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클럽, 액세서리, 기어, 어패럴까지 영역을 넓힌 토털 브랜드다.타이틀리스트의 모기업인 아쿠쉬네트 컴퍼니(Acushnet Company)는 1910년, 미국 메사츄세츠 주 작은 도시인 아쿠쉬네트 시에서 탄생했으며 현재 아쿠쉬네트 컴퍼니의 본사는 아쿠쉬네트 시와 인접한 페어헤이븐에 위치한다.설립 초기 고무 관련 제품을 생산해온 아쿠쉬네트 컴퍼니는
테일러메이드는 토털 골프브랜드지만 우드 부문에서 강세를 보인다. 메탈헤드로 골프용품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한 후 어느새 넘버원 우드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이처럼 테일러메이드가 성공한 데에는 뛰어난 제품 개발 능력이 있다. 타 브랜드의 추종을 부르는 다양한 기술과 성능으로 트렌드를 만들어왔을 정도. 재미있는 것은 앞선 개발 능력이 테일러메이드의 슬럼프를 자초하기도 했다는 점이다.1979년 탄생한 테일러메이드는 꾸준히 클럽을 출시했는데, 경쟁사가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함으로 가득했다. 그만큼 개발에 있어 상상력이 무궁무진했으며, 결과물이
누가 정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골프계에는 ‘세계 3대 수제퍼터’가 있다. 재미있다면 ‘3대’는 맞지만 그 대상이 엇갈린다는 점. 10여 년 전에는 티피 밀스와 베티나르디, 레이 쿡이었고, 근래에는 레이 쿡 대신 스카티 카메론을 꼽는 분위기다. 이견이 있지만 골프계가 현재 티피 밀스와 베티나르디, 스카티 카메론을 ‘세계 3대 수제퍼터’로 지칭, 칭송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티피 밀스는 세계 3대 수제퍼터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자리한다. 미국 최고의 수제퍼터로 불리며 화려한 이력을 쌓아왔다. 이런 티피 밀스의 수식어 중 대표적인
리키 파울러는 미국 PGA 투어를 대표하는 선수다. 그는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유명한데 워낙 독특한 탓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오렌지 컬러를 좋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렌지 컬러로 착장할 정도다). 하지만 좋은 성적과 함께 개성 강한 그를 추종하는 사람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 그를 메인 모델로 선택한 브랜드가 코브라골프다. 골프용품브랜드 중 독특함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코브라골프 입장에서는 리키 파울러만큼 어울리는 선수를 찾기 어려웠던 모양이다.코브라골프는 1973년 클럽디자이너이자 전 호주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 토
혼마골프의 역사는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혼마의 창업자 혼마 타카히로는 동생 혼마 히로오와 요코하마시 츠루미구에서 골프연습장을 운영했다. 그는 연습장 이용고객의 골프클럽 수리를 위해 이듬해 츠루미 골프센터를 오픈했다. 수리점으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 골프클럽에 눈을 떴고, 다양한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첫 번째 테스트클럽을 만들어냈다. 1962년이었다. 이후에도 반복된 테스트는 1969년 결실을 맺었고, 혼마골프라는 브랜드로 대중에게 첫 선을 보였다. 일본인 체형에 맞춰진 오리지널 클럽이자, 혼마 브랜드 탄생이었다.이후 19
핑골프는 카스텐 솔하임이 1959년 창립한 골프 브랜드다. 카스텐은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성향의 발명가였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구두수선점 운영을 시작으로 세일즈맨, 리안항공, GE(제너럴 일렉트릭)의 엔지니어를 거쳤다. 40대에 핑골프 창립 후 골프업계의 ‘트랜드 메이커’로 불리며 10여년 만에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취미, 그리고 브랜드 론칭핑골프의 탄생은 카스텐의 취미에서 비롯됐다. 골프마니아였던 그는 자신의 골프 플레이 향상을 위해 색다른 골프클럽 제작에 나섰다. GE에 근무하던 때로 밤마다 자